
제 1 화 『 헌 터 』
1. 등장
그가 전화기 소리에 잠에서 깼을 때는 햇볕이 창문을 뚫고 강하게 내리쬐는 오전 11시였다. 벌써 세번째 알림이 그를 애타게 찾고 있었지만 그는 눈을 감은채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 무시하면 제 풀에 지쳐 그만두리라. 하지만 알림은 집요하게도 계속 울리며 그를 괴롭혔다. 그는 더이상 잠에 취해 몽롱함 속에 머물수 없게되자, 울컥 화가나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사건]
장소 : 몬트레져 은행 스톤필드 지점
대상 : 50대 중반 남자
피해 : 사망자 5명
그를 괴롭혔던 알림은 할 말 만을 남기고 무심히 사라졌다. 그는 가까스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부스스한 머리
감긴 눈
오른손으로 탁자 위를 더듬으며 담배와 라이터를 찾았다. 부싯돌을 켜자 화르륵 불꽃이 솟았다. 담배 끝을 불꽃에 가져다 대고 양 볼이 쏙 들어갈만큼 빨자, 담배를 감싸던 종이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빨갛게 타들어갔다.
회색빛 뿌연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천천히 눈을 뜬다.
그는 아무 생각이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의 물건을 챙긴다.
긴 코트 한 벌
권총 한 자루
총알 서너발
총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본다. 반사된 햇빛이 총신을 타고 흘러내려 그의 눈을 가린다. 총열에는 음각으로 ‘SKIMA’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탄창을 열어 6개의 약실 구멍 중 한곳에 눈을 가까이 댄다. 검은 구멍 너머로 보이는 포스터 속 여인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하얀 이와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있다.

그는 총알을 주워 6개의 약실구멍에 하나씩 하나씩 채워넣는다. 약실에 총알이 하나씩 채워질때마다 알 수 없는 만족감이 새어나온다. 마지막 총알이 채워지자 그 중 한 발을 엄지손가락으로 두어번 쓰다듬는다. (아마 오늘의 첫번째 총알이 될 것이다)
탄창을 밀어넣자 착하고 감기는 소리와 함께 그의 준비도 마무리 된듯 해보였다.
긴 코트를 둘러 입는다.
창문 가에 핀 노란색 데이지 꽃이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난다.
타들어간 담배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누른다.
조용히 문을 열고 쏟아지는 햇볕을 맞으며 밖을 나선다.
**************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오전이었다. 은행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많은 사람들 만큼이나 기다리는 시간도 길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한 손에 번호표를 쥐고 있던 남자는 깜빡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깼을 땐 이미 자신의 번호가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허둥지둥 가방을 챙겨 창구로 향한 남자는 앞에서 일을 보던 사람을 밀치고 자신의 번호표를 직원에게 들이밀었다.
직원은 남자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다시 번호표를 뽑으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직원의 냉담한 태도에 화가 났던 것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기다렸던 것이 억울했던 것일까
남자는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기 시작했고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더니 목에서부터 불룩 튀어나온 핏줄이 얼굴까지 뻗치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발작한 사람을 처음 본 듯 직원의 몸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남자는 몸을 비틀며 떨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뼈가 꺾이는 소리가 나며 괴로운 듯 신음소리를 냈다. 그의 눈과 입에서는 피가 흘러 내렸고 그의 피부를 뒤덮은 핏줄은 검붉게 빛났다. 남자가 정신없이 괴로워자, 직원은 멀리 보이는 경비원에게 구조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남자는 정문에 있던 경비원이 다가올 틈도 없이 갑자기 오른손을 하늘로 치켜 올리더니 그대로 직원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러자 직원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대기실 바닥에 떨어졌고, 머리를 잃은 목구멍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은행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
사고가 난 지 한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런 구조의 손길이 보이지 않았다. 은행 안에 숨어있던 사람들의 호흡은 점점 더 가빠져갔다.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공포감에 짓눌려 기절해 버릴 것 같았다. 그때 은행 안쪽 창구에서 전화기 진동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은 초조함에 눈치를 보며 찾지도 못한 전화기 주인을 향해 마음 속으로 욕을 해댔다. 한 쪽 모퉁이에서 부르르 떨리는 자신의 전화기를 바라보던 직원은 처음 몇 초간은 눈을 크게 뜨고 제발 자신을 찾는 전화가 멈추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전화기의 진동은 야속하게도 끝을 모르게 계속되었다.
직원은 곧 자신이 다음 희생자가 될 것임을 깨달은 듯, 초연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고개를 돌려 광인을 보았다. 어그러진 얼굴의 광인과 눈을 마주치자 광인은 날카로운 이빨을 들어내보였다. 사람의 형상을 하였으나 사람이 아닌 광인의 경악스런 모습에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이 이런 기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이윽고 광인의 손이 직원의 머리를 향해 빠르게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멀리서 은행 정문이 조용히 열렸다. 긴 코트를 입은 남자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남자는 상황파악을 못한 듯 대기표를 뽑고는 옆에 있는 커피머신의 버튼을 눌렀다. 종이컵이 떨어지고 윙윙거리는 기계음이 울리며 커피가 쏟아져 나왔다. 광인은 갑자기 나타난 남자에게 화가난 듯 괴음을 지르며 달려갔다.
[총소리]
단발의 총소리와 함께 광인의 머리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좀 전 까지만 해도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사람을 죽이던 광인이 맥없이 쓰러져 버렸다.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상황에 사람들은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할 말을 잃었다. 커피 머신의 짧은 신호음이 커피가 완성됨을 알리자, 남자는 아무일 없는 듯 커피를 뽑아 한 모금 마시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종이컵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는 발길을 돌렸다. 그때 한 사람이 용기를 내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경찰입니까?”
남자는 그의 질문에 잠깐 고민하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나가는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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