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The Core] 회전목마

[미래소설] The Core 2025. 2. 9. 23:18

 

 

 

 

 

 

4. 회전목마

 

 

 

 

그는 촉망 받는 헬스트레이너였다. 크고 우람한 근육은 아시아계에서는 나올 수 없는 몸이라며 여기저기서 찬사가 이어졌다. 모두가 그의 몸을 부러워했다. 자신도 그런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이대로만 계속된다면 곧 엄청난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딱 거기까지만 이었다. 유명해진다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어딜 가도 그는 눈에 띄었다. 유명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지고 난 뒤부터는 부쩍 사람들이 그의 몸을 만지려고 그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들이 마치 잘 알고 있는 것 마냥 접근하는 것은 때때로 불쾌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인상을 쓸 수는 없었다. 그는 유명 인사니까.

 

 

 

 

하지만 그의 명성이 주는 보상은 그의 명성이 가져다 주는 불쾌함을 상쇄시켜 줄 만큼 크지 않았다. 그는 사업이 없었기 때문에 몇 번의 방송 출현과 출연료가 전부였다. 헬스 기구나 다른 광고에서 몇 번의 섭외가 있었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여성 모델들이 가시적 효과가 높다는 광고주의 판단에 의해 대체되어 버렸다. 더구나 사람들이 자신을 언제부턴가 사람이 아닌 신기한 동물 마냥 쳐다보며 사진 찍기를 요청하는 것이 화가 났다.

 

 

 

 

그는 매사에 짜증이 났다. 경제적 수입이나 몸 관리 이외 도움이 되지 않은 사람들의 관심이 마치 빵을 먹기 위해 달려드는 더러운 파리의 몸짓처럼 느껴졌다. 그제서야 그는 유명함이 곧 부로 반드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

 

 

 

 

얼마 전 길을 가다 우연히 부딪힌 사람과 시비가 있었고 상대방이 고의로 그를 자극해 결국 주먹 다툼이 발생했다. 그는 손바닥으로 상대방의 뺨을 두 대 갈겼다. 물론 상대방은 그의 거대한 손길을 감당할 수 없었고 다음날 뉴스에 그는 전치 3주의 폭행사건 피의자로 낙인 찍혀져 버렸다. 그는 이제 사람들에게 겁이 났다. 유명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경외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사람들에게 그저 오만한 괴물이었다. 찍었던 광고는 중단되었고 광고료의 배가 되는 금액이 손해배상으로 청구되었다. 어떤 곳도 더 이상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 혼자가 되었다.

 

 

 

 

 

“뭘 그렇게 고민하냐? 내일부터 체육관에 나와!”

 

 

 

 

 

주름진 근육을 긁으며 늙은 코치가 말했다. 세월을 함께 해온 낡고 허름해진 체육관. 그는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체육관을 찾는 소년들이 운동을 가르쳐 달라며 그에게 다가왔다. 자신을 존경한다며 그와 같은 멋진 몸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래. 모든 게 다 잊혀지고 나면 남는 건 결국 피 땀 흘려 쌓아 올린 노력의 산물 밖에 없다. 그에겐 그것이 근육으로 다져진 몸이었다. 소중한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 시합에 나가던 그때의 기분처럼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다시 최고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몇 번의 대회 출전도 있었지만 예전과는 달리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그가 가진 훌륭한 몸이 있다면 언제든 다시 재기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

 

 

 

 

그 날은 체육관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폴 스트리트 사거리 근처에 있는 체육관에서 그는 퇴근길마다 북적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녀야 했다. 평소처럼 좁은 골목길을 우회해 주차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한 가게 앞에서 싸움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냥 지나치려던 그의 눈길을 다시 돌린 것은 여성의 울부짖음이었다. 여자는 한 남자에 의해 처절하게 짓밟혔다. 얼굴은 이미 피범벅이 되어 형체를 알 수 없었고 부서진 이 사이로 피를 토하며 살려달라고 주위에 애원했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끌어당기며 큰 체구의 남성이 주변 사람을 향해 소리질렀다.

 

 

 

 

그 누구도 나서질 못했다. 아니 나설 수 없었다. 남자는 너무나 덩치가 컸고, 이성을 잃은 듯 뒤집힌 눈은 말리는 사람은 누가 됐건 여성과 같은 모습이 될 것 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었다. 남자는 겁에 질린 군중을 향해 조롱하듯 욕을 하며 소리쳤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우스운 듯 남자는 신나게 욕을 퍼부으며 소리질렀다.

 

 

 

 
 

 

 

남자의 손바닥이 다시 한번 여자의 얼굴을 향하는 순간이었다. 남자의 손바닥을 막아 선 것은 그의 손이었다. 그는 싸우기를 원하지 않았다. 갑작스런 방해에 남자는 잠시 주춤했지만 이어 그를 향해 욕을 하며 주먹을 뻗었다. 그는 무참히 짓밟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짓밟힘을 당해주었다. 그는 또 다시 주먹다짐으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남자의 발길질은 뼈를 부러뜨릴 정도로 아팠다. 어느 정도 분풀이가 풀린 그는 남자를 향해 비웃었다. 남자는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갖은 모욕적인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약물 따위로 키운 비겁한 몸뚱어리”

 

 

 

 

남자의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될 말이었다. 남자는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삶의 전부를 건드렸던 것이다. 그는 분노했다. 마음 속 깊은 심연에서부터 억누를 수 없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검은 분노가 터져 나왔다.

 

 

 

 

 

그는 광인이 되었다.

 

 

 

 

 

**************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지나 새벽 두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거리는 조용했다. 길가에 검붉은 피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흘러내렸다. 부서진 전광판이 전기음을 내며 울어대고 있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광인을 잡겠다던 헌터의 대부분은 죽거나 심하게 다쳐 사라졌다. 광인은 길가를 배회하고 있었다. 정처 없이 걸어 다녔다.

 

 

 

 

멀리서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은색빛 긴 총을 손에 쥔 남자였다. 광인은 남자를 보자 인상을 찌푸리며 위협을 가했다. 그러나 남자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서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남자는 무심한 얼굴로 광인을 바라보았다. 광인은 그의 눈동자에서 지금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알 수 없는 죽음을 느꼈다.

 

 

 

 

광인은 남자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달려 들었다. 그의 거대한 오른손이 하늘 높이 치솟더니 남자의 몸을 가로질러 시멘트 바닥을 박살냈다. 시멘트 가루가 자욱하게 번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광인은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남자는 광인의 뒤에서 아무일도 없는 듯 그를 보았다. 광인은 자신의 뒤를 빼앗긴 것에 수치심을 느꼈다.

 

 

 

 

그는 점점더 큰 분노로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육중한 손이 남자를 사정없이 공격했다. 날카로운 손톱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가는 자리에 큰 파동이 일었다. 하지만 남자는 마치 광인의 공격을 이미 알고 있는 듯 아주 짧은 간격차이로 간단히 피했다. 광인은 공격하고 또 공격했다. 하지만 공격이 계속될 수록 그의 손짓이 허공을 향해 버둥거리는 무의미한 짓처럼 느껴졌다.

 

 

 

 

[총소리]

 

 

 

 

짧은 총성이 울리며 그는 하던 공격을 멈췄다. 광인은 그의 왼팔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 바닥을 보니 그의 육중한 왼팔이 몸에서 분리되 바닥 위에 애처롭게 떨어져있었다. 그는 아픔따윈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허탈함과 상실감을 느꼈다. 자신과 평생을 함께 했던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자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먹먹함이 밀려왔다. 광인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남자는 멀리서 그런 광인을 말없이 쳐다보다 사라져버렸다.

 

 

 

 

***

 

 

 

 

한창의 교전이 끝나고 짧은 시간이 흐른 뒤에 어디선가에서 기계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순수하게 그리고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엔 주황 불빛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가 있었다. 사람이 없는 회전목마는 저 홀로 끝도 없이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었다.

 

 

 

 

광인은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그 화려한 불빛에 현혹된 것인지 아니면 고요한 침묵에 잠식당해 버린 것인지 그는 어떤 마법에 걸린 듯 가만히 회전목마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회전목마에는 기억에서 사라진 옛 어린 아이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그 아이가 자신이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뭔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회전목마가 아래 위로 움직인다. 마차도 그 뒤를 따라 움직인다. 끝도 없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아이가 뒤를 보며 웃는다. 환하게 웃는다.

 

 

 

 

 

 

[총소리]

 

 

 

 

 

 

검붉은 피가 꽃처럼 새어 나온다. 그의 눈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바라보고 있다. 꼭 주먹 한 줌만큼만 움켜쥐고 싶은 그런 아쉬움에 서서히 눈을 감는다.

 

 

 

 

 

 

 

 

 

 

**************

 

 

 

 

 

“어제 저녁 8시쯤 폴 스트리트 사거리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6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민간요원에 의해 광인이 사살되며 일단락 되었습니다. 죽은 광인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유명 헬스트레이너 출신의 A모씨로 과거에도 민간인 폭행사건으로 구속된 적이 있으며 이번에도 이와 유사한 폭행사건으로 인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결국 이런 비극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까지 추산된 사망자는 민간 요원을 포함해 총 58명으로 파악됩니다.”

 

 

 

 

오래된 술집의 배너가 시끄러운 듯 리모컨 전원을 눌러 TV를 꺼버렸다. 바에는 전보다 손님이 많이 줄었다. 군데 군데 빈자리에는 적막마저 흘렀다. 세 명 또는 네 명이서 무리를 지어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가족을 잃은 듯 하나 또는 둘이 되어 말없이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젠장. 술에 곯아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녀석은 내가 끝장냈을 건데”

 

 

 

 

맥은 맥주한잔을 통으로 들이키며 시원하게 맥주잔을 바닥에 내리쳤다. 잠시 후 술집 정문을 열고 앤더슨이 들어왔다. 술집 안에 있던 이들이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뜻밖의 시선에 놀란 듯 눈썹을 올렸지만 이내 바에서 쳐다보는 맥과 배너의 웃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늘 앉던 구석 자리에 앉았다.

 

 

 

 

“용케 살아 돌아왔군.”

 

 

 

 

맥이 술이 가득 든 맥주잔을 그의 앞에 놓으며 말했다. 그는 맥을 한번 쳐다보고는 맥주잔을 들어 천천히 목을 축였다.

 

 

 

 

“뭘 그렇게 오래 끌었냐. 내가 갔으면 10분도 안 돼서 박살을 냈을텐데”

 

 

 

 

맥이 비꼬듯 앤더슨을 향해 말을 던졌다. 앤더슨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그대로 맥주를 들이켰다. 바에는 다시 잔잔한 음악이 흘려 퍼졌다.

 

 

 

 

 

 

제 1 화 『 헌 터 』

 

 

끝.